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
생지옥이 된 등굣길. 무허가 굴착작업이 부른 대참사
28년 전,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를 기억합니다.
1995년 4월 28일 오전 7시 52분.
상인네거리에 들어설 예정으로 지반 공사 중이던 대구백화점 상인점 담당(주)표준개발의 인부가 실수로 가스관을 파손시켰다. 이때 누출된 가스가 하수관을 통해 대구 지하철 1호선 상인역 공사장으로 유입됐고,약 20분 뒤 폭발이 일어났다.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6층 건물 높이의 불기둥이 치솟았고, 50m에 달하는 건설현장이 무너져 내렸다.
평범한 등굣길..등교하지 않는 학생들
사망 101명, 부상 202명 등 총 300여 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차량 150대 이상, 건물 80여 채가 파손되는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영남중학교는 교사 1명을 포함하여 총 44명이 같은 날 세상을 떠난 비극을 맞이했다.
왜 이렇게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을까?
대구백화점 상인점 지하철공사장에 인접한 백화점 신축 공사 현장에서 도시가스 배관을 사전에 확인하지 않고 무단 굴착하는 과정에서 중장비가 가스관을 파손해 발생했다. 신축 공사를 맡은 표준개발 측의 뒤늦은 신고가 사고를 키웠다. 그 당시에만 해도 도시가스 배관이 묻혀있는 구간에서 굴착 공사를 하는 경우 도시가스사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를 규제하는 법적 조치도 미흡했다.
천공 기사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다.
사실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선 지리정보시스템(GIS)이 일반화되지 않은 데다, 대다수 도시의 지하 내에 있는 파이프나 전선 등의 정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가벼이 여겼기에 발생한 사고라고 할 수 있다. 가스관 자체도 규정인 1m보다 얕게 매설되어 있었으며, 시공사 측도 가스관 매설 등의 정보를 미리 받고 피해서 공사를 해야 하지만 허가없이 얼렁뚱땅 막무가내로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공사하다 뚫은 가스관 8cm가 부른 참사
뚫려서는 안될 것이 뚫렸다.
...
라인마크?
대도시 한복판에서 공사를 한다면, 가스관이 묻혀있는 곳을 알았어야 하지 않을까?
도시가스관 매설지역에는 '라인 마크'라는 표지못이 존재한다. 천공작업을 했던 도로에도 가스관이 2개 매설돼있다는 라인 마크가 존재했다. 심지어 가스관 매설을 위해 도로를 절개했던 흔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가스관이 묻혀있었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공사 중이던 백화점은 지반 공사가 두 달 정도 지연된 상태였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급하게 일을 처리하다 보니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고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 최악의 가스폭발사고로 이어졌다.
당시 폭발 위력은 어느정도였을까?
무게가 약 280kg이나 나가는 무거운 복공판이 폭발로 인하여 3층 건물의 옥상까지 날아갈 정도였다.
280kg짜리 복공판에 정통으로 맞으며 신체가 훼손된 사람들이 많았다. 구조대원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면서 훼손된 신체 부위까지 함께 옮겨야했다. 좀 전까지 대화를 나누던 친구, 아이를 학교에 태워다 주던 부모님, 출근 중이던 직장인. 수백명이 이 도로 위에서 생사를 오가고 있었다. 가족과 지인들의 생사를 묻는 전화가 119에 빗발치며 대구시 전체는 완전히 혼돈의 카오스였다.
폭발 속의 고요
엄청난 사고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디어에서 긴급 속보나 특보가 나오지 않았다.
방송은 자막으로 "대구 상인동 네거리에서 가스 폭발이 있었다"간략하게 전달하는데 그쳤다. 심지어 TV에서는 사고 현장 관련 특보가 아닌, 고교야구 중계가 방송됐다. 1995년 당시 방송 편성시간 제한 때문에 정규방송 시간 외에 방송을 하려면,공보처에 사전 허가를 받아야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방송도 없고 정확한 정보가 전해지지 않아,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직접 찾아 뛰어다녀야 했다.
왜 세상은 항상 큰 사고가 난 후에 바뀌는 걸까.
15km마다 안전 점검원 배치
이 사고를 계기로 국내 도시가스 안전관리 시스템이 완전히 바뀐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현재는 15km마다 안전 점검원이 배치돼 가스가 새는지 철저히 감시하게 했다.
GIS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지하 매설물을 포함한 각종 지리 정보를 컴퓨터 데이터로 변환한 정보 처리 시스템 GIS가 구축됐다.
사고 이후로 전국적으로 '지하지도'가 제작되며 지하에 매설된 도시가스, 상하수도, 고압 전선, 통신 케이블 등 수많은 시설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위험천만하게 공사를 진행하던 잘못된 관행을 개선했다.
상인동 가스사고 희생자 위령탑
"우리는 여전히 그때 그 나이에 머물러있어요."
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은 부실 공사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책임감으로 건설회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세운 회사라는 이유로 거부반응을 보이며 공사 수주가 들어오지 않고 결국 회사는 문을 닫았다. 회사가 남긴 유일한 건축한 건물은 '대구 가스폭발 참사를 추모하는 위령탑'이었다. 여기에는 희생자 101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참사 후 28년이 지났지만, 유족들은 매주 이 위령탑을 찾아오고있다.
그들을 잊지않고 기억해주는 것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다.
원칙을 지키고 주의 의무를 다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참사.4월에 아름다운 영혼이 되어 떠난 그들이 편히 쉬길 간절히 바란다.
사진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3 > 75회 "상인동 가스 폭발"<나무위키>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
편집 : 황고은 | gonl242@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