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동은 400여 년 전엔 구씨와 장씨 성을 가진 사람 둘이 마을을 개척해 구씨, 장씨의 터라해 구장터로 불렸다.
그 후 100여 년이 지난 뒤 구씨는 대부분 떠나고 장씨가 마을을 이끌면서 구씨 가문이 빠지고 장씨터가 됐다고 해 장기로 불린 게 지금의 장기동 유래다.
이곳은 1981년 7월1일 대구직할시에 편입됐다.
재미있는 마을 장기동!
✅ 장터의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라 해 이름지어진 건너실, 현재 금복주 본사 인근 조그만 산에 묘지가 있어 이를 관리하기 위한 산 관리자가 있었는 데 이를 갓지기라 부른 데서 유래한 갓 너머 마을도 있다.
✅ 임진왜란 당시 죄 없는 서민을 옥에 가둔 것에 격분한 허옥이라는 사람이 자물쇠를 들고 힘껏 내리치니 통로 바닥의 통나무가 갈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데 이 허옥이라는 사람이 1620년부터 이 마을에 살게되자 씩씩한 장정이 살게 됐다고 해 장골 마을로 불려지고 있는 곳도 있다.
✅ 1639년 갈산 중마(현 삼립식품 일대)에 김해 허씨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는 데 당시 이마을에 정자를 지으면 잘 살게 된다는 소문에 따라 한자인 바랄 망과 정자 정을 붙여 망정이란 명칭이 생기기도 했다.
출판산업단지
대구시가 출판산업을 장려하기 위해 장기동에 출판산업단지를 조성한 데 이어 출판산업단지의 중심 역할을 할 출판산업지원센터가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
센터가 들어서면 입주기업과 작가에게 마케팅, 경영, 출판 디자인 등의 전문 컨설팅으로 침체해가는 출판산업 경쟁력을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국제도서전 출품작 전시, 독서사진전, 백일장, 시민에게 개방되는 북카페 등 장기동은 문화의 중심지 역할 역시 톡톡히 할 것으로도 주목된다.
도원동
대곡택지지구로 설명이 끝나는 동네. 대곡택지지구는 주공아파트로 이루어진 아파트 마을로 월배 지역에서도 상당히 큰 아파트 마을로 손꼽힌다.
대곡지구 중심부에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상권이 형성되어 있고 대곡지구 남쪽에 대구보훈병원이 있으며 대구 보훈병원에서 수밭마을 쪽으로 좀 더 들어가다 보면 월광수변공원이 있다.
롯데캐슬레이크아파트 뒤 도원저수지 일원에 조성되어 있으며, 경치도 제법 좋고 여가 시설도 비교적 잘 돼 있어 주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성당동의 원래 위치는 지금의 문화예술회관 자리 일대로 과거에는 상댕이 또는 성댕이로 불렸다.
1910년부터 성당동으로 불렸는데 유래는 크게 두가지로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이곳이 길지로 인명 피해가 없는 좋은 땅이란 뜻이다. 성당못을 중심으로 한 산의 모습이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닮았다 해 성당으로 불렸다한다.
또 다른 유래는 80여년 전 현재 두류산 서쪽 대성사에 천주교 별장이 들어서면서 성당이 있었다고 해 성당동으로 이름지어졌다는 설도 있다.
< 대구문화예술회관 >
대구의 대표적인 문화예술공간이다. 지방 문화예술을 진흥하고 향토 문화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1990년 5월 개관하였다.
문화예술회관 본관 외에 향토역사박물관, 방짜유기박물관, 근대역사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악단, 무용단, 극단, 소년소녀합창단 등 4개 시립예술단체를 보유하고 있어 어떠한 장르의 작품도 자체 생산이 가능하다.
< 성당못 >
성당못은 거북섬과 학섬, 분수섬, 부용정, 삼선교, 분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름에 펼쳐지는 멋진 분수쇼는 더운 대구 날씨를 한껏 시원하게 해주고, 밤에는 아름다운 불빛 아래 성당못이 유려해서 여름밤 열대야를 식혀주고 산책할 수 있는 휴식처가 되고 있다.
성당못의 사계는 주위에 심어져 있는 나무와 주위의 녹지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데 멀리서 보이는 삼선교가 계절의 운치를 살려준다.
< 기념비 >
성당동에는 과거 보훈과 관련된 역사도 담고 있다.
두류공원 안에는 6ㆍ25전쟁 당시 주한미군 후방기지 사령관으로 재임한 E.J 메카우 소장의 전공과 전쟁 직후 빈민구제사업 및 질서유지 등을 위해 남긴 불멸의 공훈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대구시민과 예하 부대원들의 이름으로 1955년 3월 30일 달성공원 내에 존치해 오다가 1978년 12월 23일 달서구 두류동 571번지로 이전하였는데 우방랜드 설치로 1991년 현 위치로 2차 이전하였다.
< 서상일 선생 상 >
원화여고 내에는 비밀결사 청년단체 조직, 광복단 조직 등을 통해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동암 서상일 선생 상도 자리하고 있다.
서상일은 대구 사람으로 1909년 안희제·김동삼·윤병호 등과 함께 비밀항일단체인 신민회의 이념을 계승한 대동청년단을 조직, 독립운동을 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지역의 만세시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20년 3월 만주로부터 무기를 반입하여 일제 관공서를 습격할 계획을 준비하다가 일경에 발각되어 투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