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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편>

대구광역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자치구. 명실상부한 대구의 도심 역할을 한다.
인구는 대구광역시에서 제일 적지만, 면적도 가장 좁은 곳인 지라 인구밀도는 첫 번째로 높다.

대신동

달구벌대로와 도시철도 2호선 신남역, 3호선 서문시장역이 지나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서구, 달서구와 인접해 도심으로 들어오는 중구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대신동의 면적은 0.52㎢로 중구 면적의 약 8%를 차지한다.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축제를 개최할 정도로 주민화합이 잘되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동조합을 구성해 마을의 자원을 가꾸고 더 좋은 주거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중이다.

대신동

🔻 대신동의 유래

대구 중구 대신동은 대구부 서상면에서 ‘신정’이라 불리다 1946년 ‘대신동’이라는 명칭을 갖게 됐다.

1949년 대구시에 편입, 1963년 종로ㆍ중부출장소가 중구로 승격되면서 대구시 중구로 편입됐다.

이후 구간 경계를 일부 조정하면서 대신1동과 대신2동을 나눴으나 1998년 통합해 하나의 ‘대신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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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시장

대신동에는 영남 제일의 상권집약지이자 역사와 전통이 있는 지역 대표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이 위치하고 있다.

대구읍성의 서문 밖 약 300m 지점에서 지금의 달서천 주변 하천부지에 자연스럽게 장이 형성됐는데 서문시장의 발단이다.

서문시장은 1960년대 불이 나 목조건물이 사라지고 1970년대 새로 개장했다.

또한 2016년 6월 서문시장 야시장이 개장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우리나라 3대 시장인 서문시장의 밤거리를 무대로 하여 총 80대의 매대에서 다양한 먹거리, 살거리를 판매하며 매일 저녁, 시민과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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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동의 명품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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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장거리

대표적으로 국내 최대 침장(침구류 및 실내장식)산업의 1번지인 ‘침장거리’가 있다.

1995년 형성된 이 거리는 현재 전국 침장 생산량의 7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국내 최대의 침장 생산과 유통이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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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골목

1970년대 형성돼 현재 40여 업소가 재봉틀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미싱골목이 있다.

1980년대에 최초로 양말소매상이 들어선 이후 다양한 양말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 ‘양말골목’ 등도 있다.

🔹달성토성 커뮤니티센터

- 대신동 주민들의 소통과 나눔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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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성토성 커뮤니티센터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탄생한 곳이다.

✔ 주민들 스스로 마을의 문제를 고민하고 소통하는 마을공동체 공간이다.

✔ 마을카페, 마을 커뮤니티실, 마을공동작업소 등으로 다양한 용도에 맞게 각 공간이 구성돼 있다.

✔ 쉼터가 되기 위해서 목공예 및 원단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며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수선방을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의 쉼터가 구성되어 많은 주민들이 모임으로써 커뮤니티센터는 정보교류의 장이 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대봉1동

대봉1동의 면적은 약 0.59㎢로 중구 면적의 약 8.3%를 차지한다.

대구 도심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신천과 동서로 달리는 국채보상로가 만나고 대구 도시철도 2호선과 3호선이 지나는 등 교통의 중심지다.

현재 대봉1동은 대구시가 아름다운 거리로 선정한 동덕로(삼덕네거리~동인네거리)와 백화점, 전통한복과 웨딩 밀집거리가 있는 중심상권지역이다.

대봉1동

🔻 대봉1동의 유래

대구 중구 대봉1동은 1918년 지방 행정구역 변경으로 달성군 수성면의 봉덕동과 대명동이 대구부에 편입되면서 대봉정으로 불려지다 1946년 정(町)을 동(洞)으로 수정해 대봉동이 됐다.

이후 1980년 4월 남구의 일부가 중구로 합쳐지면서 지금의 중구 대봉1동과 2동으로 나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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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관광100선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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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길

김광석 길은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하나로 중구청이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조성한 것이다.

영원한 가객 김광석(1964~1996년)이 대구에서 출생하고 유년 시절 대봉동에서 자란 것에서 착안해 만들어졌다. 신천대로 옹벽을 따라 꾸몄으며 높이 3m의 옹벽은 김광석 노래를 테마로 한 다양한 벽화와 조형물 등으로 채워져 있다. 골목방송스튜디오, 야외공연장, 쌈지공원 등도 자리잡고 있다. 

방천시장

방천시장은 대구도심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신천과 동서로 달리는 국채보상로가 만나는 수성교 옆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신천제방을 따라 개설된 시장이라 하여 방천시장이라 불렸다.

한때 점포 수가 1천 개가 넘는 대구의 대표 전통시장 중 하나였던 방천시장은 도심공동화와 대형마트, 백화점 등에 밀려 쇠락해 가던 중 2009년부터 실시된 ‘별의별 별시장 프로젝트’ ‘문전성시프로젝트’ 등을 통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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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중구영어도서관



대봉1동에는 대구ㆍ경북 최초의 영어도서관인 ‘대구중구영어도서관’도 자리잡고 있다.

대구중구영어도서관은 대봉1동 주민센터 2층에 2013년 문을 열었다.

전체 350여㎡ 규모에 둥근 모양의 서가 2개와 리스닝 존이 들어선 열람실, 스토리텔링 및 테마공간 등을 갖췄다. 문학ㆍ예술ㆍ역사 등 1만5천여 권의 장르별 영어도서가 구비돼 있으며 원어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중구영어도서관은 전문가에 의해 선정된 영어도서를 수준별, 주제별로 배치하고 원어민과 함께하는 영어독서프로그램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중구 남산3동

중구 남산3동은 도심 최고의 주거지역으로, 면적이 약 0.41㎢로 중구 면적의 5.8%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서쪽으로는 달성로, 남쪽으로는 명덕로, 동쪽으로는 자동차부속골목을 경계로 접하고 있어 주거가 밀집해 있다.

특히 이곳에는 학교가 많다. 동 전체 면적의 40% 정도가 학교부지다. 천주교재단의 교구청과 성유스타노대학, 성바오로 수녀원, 경북공고, 경구중학교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구 남산3동

🔻 중구 남산3동의 유래

대구 중구 남산3동은 경상감영의 남쪽에 있는 산 밑에 위치한다고 해서 남산이라 불렸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는 남산정(南山町)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당시 달성 서씨들의 소유인 논, 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8ㆍ15광복 1년 뒤인 1946년에 남산동으로 변경됐으며 1980년 지금의 남산3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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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타운

남산3동에는 전국 유일의 가톨릭타운이 위치해 있다. 가톨릭타운은 100여 년 전 국채보상운동의 선구자였던 서상돈 선생이 기증한 남산동 일대 터를 기반으로 형성됐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서상돈 선생은 자신의 남산동 종묘원 3만3천여㎡를 천주교 대구대교구에 기증했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성모당(聖母堂)과 성 유스티노 신학대학과 교구청,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등을 지었고 현재의 가톨릭타운이 됐다.

성모당은 프랑스 루르드 동굴을 본떠서 만들어진 전국적으로 유명한 천주교 성지다. 적ㆍ흑벽돌과 화강암으로 쌓아올린 아름답고 정교한 건물로 유명하며,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9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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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3동 명품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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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부속골목

남산 자동차부속골목은 서울 장안평거리를 제외하고는 한강 이남 최대규모의 자동차골목이다.

이곳에는 2010년부터 해마다 전국 유일의 거리 모터쇼인 ‘대구스트리트 모터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남산동 자동차부속골목 상인회가 주최하는 이 페스티벌은 슈퍼 카, 올드 카, 튜닝 카, 클래식 카 등이 전시되며 국내 정상급 레이싱 모델들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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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골목

남산인쇄골목은 1930년대 말 활판 인쇄소가 모여들면서 형성됐다.

6ㆍ25전쟁 때문에 서울 등 수도권 인쇄업체가 몰려와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곳에 500여개 업체가 자리잡고 있다.

삼덕동

대구시 중구 삼덕동은 대구읍성의 동쪽 성곽 바깥에 위치해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 논과 밭이 형성된 곳이었다.

이후 1910년대에 현재의 심덕 1가를 중심으로 바둑판 같은 신작로가 생기면서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로 변했다.

한국에는 없던 2층 목조가옥이나 복층구조의 일제 강점기 관사밀집지역으로 유명하다.

삼덕동

🔻 삼덕동의 유래

일제시대 삼덕동은 대구부 동상면의 지역이었는데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남성리, 신동의 각 일부를 합해 1914년부터 삼립정(三笠町)이라고 하다가 1947년에 덕산동 일부를 합한 후 천덕(天德), 지덕(地德), 인덕(人德)을 뜻하는 삼덕동(三德洞)으로 개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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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인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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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의과대학병원 본관

(구)도립대구병원은 1928년에 지어진 2층의 붉은 벽돌(조적조)건물로 대구에 현존하는 단일 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의 일제 강점기 건물이며 국가지정 사적 제443호로 지정돼 현재 경북대 의과대학병원 본관으로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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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덕초교 교장 관사

대구삼덕초교 옛 관사는 1939년 덕산공립심상소학교 교장관사로 건립돼 사용되다 해방 후부터 2000년까지 삼덕초교 교장 관사로 사용된 적산가옥이며, 국가지정등록문화재 제581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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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

삼덕 2가 26번지에는 1916년 일본인 승려에 의해 창건된 일제 강점기 사찰이 있는데 1968년 동화사의 원명 스님이 이곳의 주지로 오면서 ‘관음사’가 됐고, 일본인 절로 지어진 후 한국인 절로 이어진 곳은 대구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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